규제 수준 낮추기 위해 기업 입장 전달하고 다양한 정보 수집
삼성전자 간부가 기자출입증을 이용해 국회를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폭로하자, 삼성전자가 특별감사를 통해 부정한 방법으로 국회를 출입한 임직원 2명을 추가로 적발하고 관련자를 전원 징계하기로 했다. 삼성전자(005930)가 논란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나서면서 해당 간부가 담당했던 대관(對官) 업무에 대한 재계 안팎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정부·국회·검·경찰 등 관을 상대로 벌이는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통칭하는 대관은 기업들이 상당한 공을 들이는 분야다. 관에 기업 입장을 충분히 전달해 입법 과정에 기업에 대한 규제 수준을 낮추고, 경영자가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대관 담당자의 핵심 업무다. 대관을 담당하는 한 대기업 부장은 "규제 수준이 기업 실적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지금의 경영 환경에서 대관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기업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기업 관련 사건 사고, 정부 정책의 변화, 업계 내 분쟁이 일어날 때도 대관 담당자는 바빠진다. 최근 현대 전기차 ‘코나’에서 화재가 잇따르자 국토교통부는 "제조 과정에서 배터리 셀 분리막이 손상된 것이 원인"이라고 발표하고 리콜을 명령했다. LG화학이 공급한 배터리가 문제라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LG화학 대관 라인이 정보를 미리 인지하지 못해 내부에서 동요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의 공식 발표 내용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해 LG화학은 공식 입장을 두시간 늦게 발표하고 말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정부 공식 발표에 반박하려면 정부 발표와 동시에 반박문을 내놓아야 여론전에서 밀리지 않을 수 있다"면서 "이 때문에 정부 발표가 어떤 방향으로 나올지 분위기라도 미리 인지하는 것이 대관의 중요한 업무"라고 강조했다.
최근 대관 조직을 신설한 한 중견기업 관계자는 "노사 문제부터 경영 환경 변화 등 이슈가 많다 보니 담당해야 하는 국회 상임위만 정무위와 산통위, 환노위, 기재위 등 한둘이 아니게 됐다"면서 "오너의 지시로 조직을 만들었는데 이쪽 분야 전문가는 제한적이라 조직 구성에 어려움이 크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관 업무라 하면 '정경유착'이라는 부정적인 시선이 담긴다. 특히 이재용 삼성 부회장은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발생한 신규 순환출자 문제를 해소하려고 벌인 대관 활동이 뇌물 공여 혐의가 적용돼 구속으로 이어졌다. 이후 삼성은 지난 2017년 ‘최순실 사태’ 직후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해체하면서 그룹 차원의 대관업무 조직을 아예 없앴다.
이 때문에 국내 기업의 대관 업무는 음성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한편에서는 기업의 대관 업무는 이들이 상대하는 정부와 국회 입장에서도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예를 들어 정부와 국회가 감사위원의 분리선임과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는 상법 개정안을 마련할 때 기업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의견을 수렴하는데, 당장 대면하는 사람이 기업이나 재계단체 대관 담당자다. 공정거래위원회나 금융감독원, 검찰, 경찰 등 사정기관이 기업 활동을 점검할 때 상대하는 것도 대관 담당자다.
반드시 해당 기업과 관련된 이슈가 아니라도 정부와 국회가 기업인을 만나야 하는 경우는 많다. 예를 들어 공정위는 지난 2016년 미국 통신 업체 퀄컴에 1조원이 넘는 역대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했는데, 국내 시장에서 퀄컴이 불공정 행위를 벌이고 있는지를 조사하기 전 해당 업계의 관행이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공정위 관계자는 삼성전자 대관 담당자를 불러 설명을 들었다.
또 경기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기업들에 적극적인 고용, 투자 역할을 당부하기 위한 간담회를 연다고 가정할 때, 정부 관계자가 행사를 위한 사전 작업을 위해 먼저 만나는 사람도 대관 담당자다. 기업은 대관 담당자를 통해 기업 입장을 관에 알리고, 정부와 국회는 이를 통해 여론을 수렴하는 일종의 공생 관계를 형성하는 셈이다.
그래서 해외에서는 아예 로비스트를 합법적으로 활동하게 한다. 마이크로소프트 공동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최근 미국 정부 내 IT 업체들에 대한 반독점 규제가 강화되는 상황과 관련해 "내가 저지른 몇 가지 실수 중 하나는 워싱턴DC에 절대 가지 않았던 것"이라고 했다. 우리 말로 풀자면 대관 활동을 소홀히 해 기업 환경이 악화된 상황이 안타깝다는 의미다.
공식적으로 요구하고 있지 않지만 기업들이 합법적인 대관 업무를 위한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기업과 관이 부정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근절해야 하지만, 효율적인 소통 창구를 열어두는 것은 기업에나 정부에나 매우 중요하다"며 "기업의 자정 노력과 함께 대관 활동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October 16, 2020 at 04:0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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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입증 동원해 국회 출입...기업 '대관 업무' 뭐길래 -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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